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

🔖 인생은 저기 있는 게 아닐까.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.

인생이 저기 있는 게 아닐지 몰라도 여기에는 확실히 없는 것 같아.

매 순간 레누가 절절하게 고백하는 질투의 감정이야말로, 우리를 이 책에 매어놓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. 우리가 가장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감정은,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와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불안이니까. 소녀를 여자로 만드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라고 생각해왔다. 엘레나 페란테는 그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를, 아주 두꺼운 네 권의 소설로 들려주고 있다.


🔖 문제는 웬만큼 배워서 한번에 고치기 어렵다는 데 있다.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편견에 기인한 생각을 뿌리 뽑겠다고 마음먹기는 쉬운데, 늘 어딘가에 생각의 조각들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. 그래서 더 간절히, 누군가가 나 대신 책임지고 모든 것을 정리해서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.

그리고 바로 그런 욕망을 느낀다는 이유에서 가이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. 남이 만든 지도를 따르겠다는 게으름이야말로, 나 자신으로부터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노력을 떼어놓는 (그리고 타인에게 위임해버린 뒤 책임까지 전가하는) 일이 될 수 있다. 설령 지도를 만든다 해도, 업데이트 주기는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? 스스로 해결하고자 고민하지 않은 질문을 남이 만든 기준으로 답해준다고 바로 달라질 리 없으며, 시대와 지역에 무관한 절대 가이드가 있다면 그것은 경전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.

내가 스무 살 때 배웠던 몇몇 좋아 보였던 가치들이 이제는 낡게 보인다는 점이 기쁘다. 그만큼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것들이 좋아졌고, 나 자신이 더 멀리까지 왔다는 믿음이 생긴다. 동시에 지금의 내가 믿고 있는 가치들 또한 매번 점검하고 업데이트 또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닿는다.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며 과거의 인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. 지금 이 시점에서의 고민, 옳다고 믿는 것들을 책에 쓰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이 책에서 하는 말이 까마득한 옛날 일로 느껴지기를 바란다.

그러니 되뇐다. 가이드 없음, 전진 가능.